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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1편(현장 발권) | 국립중앙박물관

about A 2022. 7. 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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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리움미술관에서 겸재 정성의 인왕제색도를 본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 눈앞에서 봤을 때 압도되는 느낌을 준 첫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후에 해외여행도 가고 다른 전시도 보면서 책에서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볼 기회가 많았지만 첫정이 무섭다고 실물을 앞에서 볼 때의 감동을 얘기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항상 인왕제색도였던 것 같다.

인왕제색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가 된다는 뉴스를 봤다. 인왕제색도 외에도 천경자, 이중섭 등 내노라하는 국내 작가와 모네의 그림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당연히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표를 찾아보니 인왕제색도를 볼 수 있는 5, 6월 전시는 모두 매진이었다ㅠㅠ 부지런한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부지런하다. 현장에 가면 당일표를 살 수 있다는데 5, 6월에는 평일에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주말엔 줄이 길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
그렇게 6월을 보내고 7월이 되자 여유가 좀 생겼다. 보고 싶은 인왕제색도는 이제 볼 수 없지만 다른 좋은 작품도 많았기에 평일에 하루 날을 잡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현장 매매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앞에 매표소가 있었다. 11시쯤 도착했는데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았고 티켓부스 앞까지 가니 12시 30분 입장 표까지 매진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끊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인 1시 표로 구매. 10시에 가도 줄이 길다는 후기를 봐서 걱정하면서 이촌역에서부터 파워워킹했는데 전시 후기로 접어들어서 그런지 티켓팅이 힘들지 않았다. 1시 전시를 보고 3시쯤 매표소 앞을 다시 지나갔는데 그때는 이미 당일 표가 매진이었다. 2022년 8월 28일까지 전시를 하니 평일 오전에 여유가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것 같다.


수월하게 입장권 겟!

티켓 가격은 성인 5천원, 어린이 및 청소년 3천원이다.


1.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건희 회장의 집에 초대된 듯한 구성과 중간중간에 있는 이건희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두 군데의 섹션 중에 첫 섹션의 이름이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였다. 여기에는 '가족과 사랑'을 다룬 회화와 조각 작품을 모아놨다고 한다. 보통 전시회에는 어느 작가의 작품이나 특정 시대, 주제 등에 따라 전시품을 모아 두는데 이 전시는 말 그대로 수집가의 취향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한 전시실 안에 조선시대 생활 용품도 볼 수 있고 현대 회화 작품, 국내 작가의 작품, 모네와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한 데 모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1. 석인상(조선, 화강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주먹코에 눈이 튀어 나와 있는 석인상이 사람들은 반긴다. 전염병을 불러오는 잡귀로부터 마을을 지키거나 풍수지리상 약한 곳을 메워 주는 장승 역할을 했을 거라는 설명이 눈에 띄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첫 작품이었다.



2. 문
'이 문을 지나면 수집품이 가득한 저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3. 김씨연대기 II(임옥상, 1991년, 종이 부조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자세히 보면 기와집 아래에 흙 위에 못으로 그린 듯한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흙과 하나된 노부부가 집을 받치고 있는 것 같다.


4. 모자(박영수, 1976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는 태어난 후에도 엄마에게 한 몸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듯 어린아이가 여인의 목에 감긴 포대에 싸여 있다.'는 작품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엄마는 우주이자 자신이겠지.


5. 동자석(조선, 돌, 국립중앙박물관)
무덤 앞에 수호신으로 세워 놓는 동자석이라고 한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현무암이나 응회암과 같은 화산암으로 독특한 조형미가 느껴지는 동자석을 많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제주도에 있는 것처럼 현무암을 바닥에 깔고 다양한 표정의 동자석을 전시한 공간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전시품이었다. 작은 창문으로 모네의 수련과 관람객들이 보이고 나뭇잎 그림자 연출도 좋았다. 동자석들의 표정이 귀여워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6. 가족(김동우, 1997년, 사암, 국립현대미술관)
우리 세대에 가장 친숙한 가족 구성인 4인 가족의 모습이 무척이나 평범해 찍었다. 나의 다음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구성이 되겠지?


7. 정효자전(위), 정부인전(아래)(정약용, 조선 1814년,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강진에 유배를 간 정약용이 정여주란 사람의 요청으로 쓴 글이라고 한다.

- 정효자전: 정여주의 아들 정관일은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의 효행에 관한 글을 지어 달라고 정약용에게 요청을 했다고 한다.
"아비저가 들에서 떨고 계시는데 자식은 방에서 따뜻하게 있으니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정효자전에서

- 정부인전: 3년 뒤 정여주는 다시 자신의 며느리의 엄격한 자녀 교육에 관한 글도 부탁했다.
"어찌 엿을 씹어 먹여 주고 아이 반찬을 잘 챙겨주는 것만이 자애로운 어머니라 할 수 있겠는가" 정부인전에서

다산 정약용이 직접 쓴 글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정말 다양하게 모았구나 싶었다.



비좁은 골방도 행복한 아틀리에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좁은 방처럼 연출한 공간에 이중섭, 김환기, 조선의 달항아리 등을 모아 두었다. 제주도 이중섭 거리에 있는 화가가 살던 집(말 그대로 진짜 좁다)이 생각나는 공간 연출이었다.

8. 현해탄(이중섭)
부인과 아이들을 일본으로 먼저 보내고 뒤늦게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는 화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9. 판잣집 화실(이중섭, 1950년대, 종이에 펜, 수채, 크레용, 국립현대미술관)


달과 항아리
항아리와 달


10. 백자 달항아리(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11. 작품(김환기, 1950년대, 하드보드에 유채, 광주시립미술관)
'화가는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김환기는 달과 백자의 형태를 연결시켜 큰 백자 항아리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큰 백자 항아리에 달의 이비지를 더해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밤하늘의 둥근 달, 이지러진 달항아리, 더 이지러진 달그림자의 형태 변주가 자연스럽다.' 작품 설명 중에서


12. 춤추는 가족(이중섭, 1955년, 종이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의 부인과 아이들이 일본에 있던 시절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한다. 화가는 이 시기에 가족과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다 같이 어울려 놀고 춤추는 그림을 많이 남겼다.


13. 고가구들
가구 뒤에 있는 작은 창으로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푸른 산이 있는 풍경이 계속 바뀌어 한동안 바라보았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14. 수련이 있는 연못(클로드 모네, 1917-1920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모네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정착해 연못이 있는 정원을 가꿨다. 이 정원에서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제작했다고 한다. 모네는 1926년에 사망했으니 이 작품은 죽기 몇 년 전에 그린 것 같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고생을 했는데 증상이 심해지면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였고 1923년에는 눈 수술을 받고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던 시기에도 오랜시간 애정하며 가꾼 정원을 기억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정원 사랑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된다. 이 '수련이 있는 연못'도 모네가 백내장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그린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포기할 법도 한데 화가는 자연을 보고 그대로 그리던 모사에서 추상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15. 작품 87-A1(곽인식, 1987년, 캔버스, 종이에 수채, 국립현대미술관)
모네의 그림이 있는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작품이다. 그림의 푸른 색감이 연못의 푸른 물과 초록의 연잎을 연상시킨다. 곽인식은 흡습성이 좋은 얇은 화지에 물감이 번지는 효과를 내는 기법으로 활동을 한 화가라고 한다. 물감이 번지는 모양새가 한국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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